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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토전통시장에서 “볼륨을 높여요”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충북 제천 내토전통시장 안 ‘시장통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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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1.17 19:47   조회수 : 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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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오후 2시, 충북 제천시 중앙로 내토전통시장 스피커로 DJ 멘트가 울려 퍼졌다. ‘시장통방송국’ 부스는 시장 안 빨간 어묵 가게 대각선에 있는 생선 가게 2층에 있다. 매주 금요일 코너 “해피내토시장으로 가요”의 진행자인 정근옥(47) 씨는 차분한 목소리로 오프닝 멘트를 했다. 시장을 찾은 손님들은 투명한 유리로 된 라디오 부스를 쳐다봤다. 근옥 씨는 손님들의 눈을 바라보며 “좋은 물건들이 다 공짜일 수는 없겠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많이 구입해주시라”고 말했다. 곧이어 트로트 노래 ‘청춘아 인생아’를 틀었다.

 

   
▲ 10월 26일 제천 내토전통시장 시장통방송국 부스에서 금요일 진행자 정근옥 씨가 실시간 공연으로 영화 <쎄시봉>에 나온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이크’를 부르고 있다. ⓒ 최은솔

 

9년째 운영되는 시장 라디오

내토시장 시장통방송국은 전통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평일 한 시간씩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이다. 정식으로 허가받은 라디오 방송은 아니라서, 시장에 설치된 스피커로만 들을 수 있다. 2013년 11월 골목형시장 육성사업의 하나로 만들어졌고, 현재는 제천문화재단에서 이 사업을 주관한다. 문화재단은 진행자를 뽑아 교육하고, 프로그램 제작도 돕는다. 진행자는 요일별로 한 명씩, 모두 다섯 명이다. 한 달에 한 번은 진행자 다섯 명이 모두 모여 개선사항을 논의한다. 

 

일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처럼 작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프로그램 내용은 진행자가 직접 구성한다. 대체로 시장상인과 이용객들에게 유용한 생활상식과 상인들 사연으로 채워진다. 진행자는 방송에 쓸 사연을 받으러 직접 내토시장 상인들에게 설문지를 돌리기도 한다. 근옥 씨는 화재 예방에 필요한 안전 수칙을 전달하려고 직접 소방서 홍보팀을 섭외했고, 보이스피싱 예방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경찰관을 초대했다. 조만간 한의사도 섭외해, 건강 상식을 전달할 계획이다. 

 

올해 9월까지는 진행자마다 독특한 설정이 없었다. 그동안은 진행자가 알아서 내용을 짜도록 맡겨뒀다. 제천문화재

단은 9월부터 진행자별로 각자 방송에서 특성을 갖도록 요구했다. 예를 들어, 60분 가운데 15분 정도는 팝 음악만 소개한다든지, 70~80년대 흘러간 음악만 트는 식으로 특징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근옥 씨는 ‘통기타 라이브 콘서트’로 차별화했다. 

 

   
▲ 내토전통시장 첫 번째 교차로의 강원수산 2층에 있는 시장통방송국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이날 방송 중에도 몇몇 이용객들은 음식이 나오는 걸 기다리면서 라디오 부스를 쳐다보았다. ⓒ 최은솔

 

족발에 커피 선물하는 팬도 생겨

노래가 나올 동안 진행자 근옥 씨는 능숙하게 음향장비를 조정한 뒤 대본을 미리 읽었다. 근옥 씨가 직접 쓴 원고는 A4 용지로 4페이지 분량이었다. 빼곡하게 오늘의 노래목록과 DJ 멘트가 적혀 있었다. 총 방송시간은 60분이다. 절반은 노래로 채우고, 나머지는 DJ 멘트와 근옥 씨의 라이브 공연으로 채운다. 노래는 4회차로 나누어 한 회차에 2~3곡씩 연달아 튼다. 

 

근옥 씨는 금요일 방송 원고를 매주 목요일 밤에 완성한다. 틈날 때마다 상인들에게 유용한 생활상식이나 문구를 모은다. 이날 방송에서 소개한 내용은 ‘단백질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여섯 가지 신호’ 같은 건강상식이었다. 내토시장에서 열리는 행사 소식도 빠지지 않는다. 그날 열리고 있던 국화 전시회와 10월 음악회 일정을 전달했다. 

 

   
▲ 정근옥 씨는 노래 교실에서는 노래를 가르치고, 악기 학원에서는 기타를 가르친다. 그는 본인 이름으로 된 음반도 출시한 ‘통기타 가수’다. 이따금 그를 알아본 수강생들은 상인회 사무실에 음식 선물을 놓고 간다. ⓒ 최은솔

 

노래목록에는 고정된 틀이 있다. 상인들이 좋아하는 인기 트로트 1~2곡에 시장을 이용하는 젊은 층을 겨냥한 최신곡도 가미한다. 이날 틀어준 이무진의 ‘신호등’이나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 같은 노래다. 7대 3 비율로 트로트를 좀 더 많이 튼다. 근옥 씨는 “(라디오 부스 대각선에 있는) 빨간어묵 집을 찾아오는 젊은이들이 최신 노래를 틀면 신기해하면서 저를 쳐다보더라고요”라며 “재래시장에서도 아는 노래가 나오니까 시장을 시장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도록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방송시간이 절반 정도 지난 2시 30분쯤, 근옥 씨는 직접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라이브 공연을 시작했다. 서정적인 반주와 함께 시작한 유심초의 ‘사랑이여’를 첫 곡으로 영화 <쎄시봉>에도 나온 트윈폴리오의 ‘웨딩케이크’를 불렀다. 이날 공연은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까지 1980~90년대에 유행했던 포크 음악으로 채워졌다. 근옥 씨는 신청곡도 받는다. 그는 “사연이 있는 곡이나 좋아하는 곡들을 신청해주시면 부족하지만 제 목소리로 전달해드리니 꼭 신청해달라”고 말했다.

 

근옥 씨에게는 팬도 있다. 기억에 남은 방송을 묻자 근옥 씨는 지나가던 손님에게 족발과 요구르트를 선물받은 날을 꼽았다. 제천시에서 여는 노래교실에 오는 60~70대 수강생들이 강사로 활동하는 근옥 씨에게 선물한 것이다. 또 다른 수강생은 커피와 과일도 놓고 갔다. 근옥 씨는 “우리 강사 방송한다고 손 흔들어주고 음식 놓고 가시는데, 이럴 때마다 시장에 정이 있는 건 맞구나 싶죠”라고 말했다.

 

내토시장에서 38년째 ‘금산고려인삼사’를 운영하는 서경혜(62) 씨는 “시장 소식도 들려주고 지인들이 하는 노래나 연주를 볼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애청자인 서 씨는 라디오가 시장상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고 했다. 서 씨는 “외부에서 온 손님들이 라디오 방송을 보고 신기한지 사진도 찍고, 노래도 신청한다”라고 말했다.

 

시장 상인들 방송 참여 늘리는 건 과제

시장 라디오가 조금 더 활성화하려면 상인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 아직 상인들의 참여는 노래자랑 시간 외에는 활발하지 않다. 라디오가 방송되는 2시~3시는 손님이 가장 많은 시간대다. 장사하기 바쁜 상인들에게 라디오 프로그램 참여는 쉽지 않다. 김정문 내토전통시장 상인회장은 “상인들은 내 장사를 해야 하는데 매출이 걸려있으니 직접 (라디오에) 참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했다. 

 

   
▲ 김정문 내토전통시장 상인회장은 지속가능한 시장 라디오가 되려면, 상인들과 일반 제천 시민들과의 접점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최은솔

 

라디오 방송이 장사에 방해가 안 되려면 음량 조절도 중요하다. 라디오 진행자 정근옥 씨는 “장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음량을 적절히 조절한다”라며 “노래를 선곡할 때도 너무 신나는 노래보다 잔잔한 7080 포크 음악 위주로 선택한다”라고 말했다. 

 

제천문화재단은 내토시장라디오를 경기도 양평군의 '양평물맑은시장'과 광주광역시의 '양동시장' 라디오처럼 활성화할 방안을 고민 중이다. 두 시장의 라디오는 전문진행자를 두고 체계적으로 운영되며, 상인의 참여가 활발히 이뤄진다. 문화재단의 천석용 주임은 “시장을 활성화하는 게 시장 라디오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시장상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실 수 있길 바라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장 상인이나 이용객들이 라디오방송을 더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김정문 회장은 1층에 이동 부스를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경품을 나눠주고 고객의 사연을 받는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는 방안도 있다. 김 회장은 “제천에 있는 청년과 학생들이 시장 라디오 방송과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단비뉴스> 보도를 허락을 구하고 중복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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