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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 지킬 약속 안 해, 공약 삭제는 반성"
    <단비뉴스>는 이상천 제천시장과 지난달 28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올해 6월 있을 지방선거에 앞서, 민선 7기 공약사업 이행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시장으로서 한 약속은 모두 지켰다고 자신했다. 이행률과 실질적인 성과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자부했다. 실제 도심 활성화와 여러 복지정책 등에서 그가 이룬 성과가 적지 않다. 공약한 사업이 아니더라도 시책 전반을 추진력 있게 진행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하지만 선거 때 내세운 공약이 당선 뒤 빠져버리거나 애초 공약한 목표치가 기대 수준에는 못 미치기도 했다. <단비뉴스>가 지적한 내용에 대해 이 시장은 반성하는 대목도 있다며 공약 이행에 일부 부족한 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다음 선거에 나서 모자란 정책을 보완하는 공약을 내놓겠다며 재선 의지를 비치기도 했다.    “높은 이행률, 지킬 약속만 했다” “역대 어느 시장보다 공약에 신경을 썼고, 시민과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용직 공무원 100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임기 중에 전환하겠다 했는데, 106명 바꿨어요. 충청북도가 아니라 전국 어디서도 이 정도 성과는 저희밖에 없을 거예요. 제가 공약해서 지킨 거예요.” 이상천 시장은 인터뷰 첫머리에 “공약 이행률은 자신 있다”고 강하게 말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이상천 시장의 42개 공약 이행률은 90%다. 하소동 화재건물 철거와 활용방안 마련, 제천시농산물유통법인 설립 등 전체 절반이 넘는 28개 공약이 이미 이행률 100%를 달성했다. 충청북도 자치연수원 이전과 옛 동명초등학교 부지 도심광장 조성 등 큰 공사가 필요한 공약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미 건설에 들어갔거나 마지막 행정절차인 실시설계 단계에 있어 민선 7기 임기 말까지 일단 큰 차질없이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 시장은 높은 공약 이행률을 근거로 시민과 약속을 지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형식적이고 끼워 맞추기식 공약은 완전히 반대한다”며 지킬 수 있는 공약만 내걸었다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인구 증가처럼 이루기 어려운 목표는 공약하지 않은 것을 두고 스스로 ‘기특하게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추세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을 막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소규모 전원마을 조성 지원정책(귀농귀촌 정주센터 설립 공약)을 하는 것은 귀농 대책을 더 실질적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 지난해 12월 이상천 시장이 <단비뉴스>에 공약 이행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임효진   이 시장은 그러면서도 “공약 이행률을 높이려고 (수치로 드러나는) 성과에만 집착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체류형 관광’ 정책으로 추진하는 의림지 리조트 건설 공약은 이행률 50%로, 여러 공약 가운데 이행률이 가장 낮다. 그동안 여러 기업이 사업을 희망했지만 제천시가 마땅한 사업자를 선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천시는 지난달 드디어 민간사업자를 선정해 발표하겠다고 밝혔지만, 역시 이번에도 내실 있는 사업을 추진할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재심사하기로 했다. 이 시장은 “두 회사가 사업을 하겠다고 지원했는데, 한 곳은 총자산이 700억 원이고, 한 곳은 5억 원밖에 안 돼 정량평가 점수가 모자랐다”며 “정성평가 점수를 조금만 더 주면 기준점수를 넘기게 할 수도 있었지만 공약 이행이 늦어지더라도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제천시는 사업자들에게 컨소시엄을 구성해 자본력을 확보한 뒤 다시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체류형 관광 정책의 또 다른 주요 공약인 드림팜랜드 조성사업은 이행률이 70%로, 올해 말이면 실시설계와 토지매수가 완료돼 내년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공약 자체는 차질없이 이행되고 있지만 막대한 비용과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테마파크가 들어설 예정지에 사유지 매각에 난색을 드러내는 토지주도 일부 있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전체 토지주 가운데 21%가 공동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며 “공익을 위한 사업을 할 때 단호해야 한다. (끝까지 협의매수가 되지 않으면) 강제수용해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안전 주요 공약 제외된 것은 ‘죄송’ 이 시장은 공약 이행률뿐만 아니라 ‘공약 확정률’도 준수하다고 자부했다. 선거 공보물에 공약 46개를 발표했는데, 당선 뒤 이행 지표를 관리할 공약으로 42개를 채택해, 확정률이 93%라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를 공약 사항으로 볼 것인지에 따라 이 수치는 달라진다. 이 시장은 당선 뒤 제천시에 59개 공약이 실현 가능한지 검토하라고 제출했다. 여러 기자회견과 온라인 홍보 등을 통해 공약한 내용이 모두 포함된 목록이었다. 이 가운데는 지역주민 건강과 안전에 필요한 굵직한 사업도 포함돼 있었지만 최종 이행 대상 공약 목록에서 제외됐다.    시립 심·뇌혈관질환센터 설치는 이 시장이 출마선언문에서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을 만큼 비중이 컸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제천시 건강관리과의 검토 결과에 따라 취임 직후 이행 공약 목록에서 제외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제천명지병원이 자체적으로 심뇌혈관센터 설치를 추진해 착공까지 했다. 보건복지부는 2025년까지 전국 70개 중진료권마다 지역심뇌혈관질환센터 운영을 지원할 계획인데, 충북 북부권역인 제천권에서는 명지병원이 유일해 정부 지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 지난해 11월 명지병원 심뇌혈관센터 기공식에 참석해 발언하는 이상천 시장. ⓒ 신현우   “표만 얻으려고 지키지 못할 공약을 한 적이 없어요. 대형병원 유치하겠다? 한 적 없어요. 심뇌혈관질환센터는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오늘 (인터뷰 준비하면서) 봤더니, 공약에서 뺐더라고요. 제가 공약에서 뺐어요. 혹시 내가 못 하면 어떡하나 (당시에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 시장은 공약에서는 빠졌더라도, 명지병원 심뇌혈관센터 건립 추진에 역할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그는 “(명지병원 측에 물어보면) 시와 소통이 안 됐으면 그 사업을 할 생각조차 못 했을 거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라며 “그만큼 내가 신경 쓴 결과”라고 말했다. 또 “센터가 지어지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지원 방법에 대해 이 시장은 “심뇌혈관센터를 24시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전문의가 네댓 명”이라며 “연간 급여가 한 사람당 1억 원 가까이 들어가는데 제천시가 (임금을) 보전해 주는 게 의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건복지부에서는 대학병원도 아닌 일반병원에 지자체가 지원금을 주는 데 부정적인 의견”이라며 “그럼에도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필요하다면 지원방안을 담은 조례를 만들어 지자체가 개입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예비후보 시절의 주민 안전을 위한 공약이 제외된 것도 물어봤다. 제천시 왕암동 제2 산업단지에 들어선 수십 개 화학물질제조업체에서는 위험한 물질을 취급하다 보니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잇따랐다. 이들에 대한 ‘화학물질 정보 공개 제도화’는 이상천 시장이 예비후보 시절 시민의 안전을 지키겠다며 제시한 공약이지만, 정식 공약으로 이어가지 않았다. 그러다 시장 당선 1년 뒤인 지난 2019년 5월 화학제품 생산공장에서 폭발이 일어나 3명이 숨지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노동계는 LG화학이 원청으로서 화학실험을 의뢰해놓고 영업기밀 뒤에 숨어 어떤 화학물질을 썼는지도 숨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부끄럽지만 (화학물질 정보 공개 제도화가) 정식 공약이 안 된 것을 이번에 알았다”며 “제도화했으면 화학 사고에 선제 대응이 가능했을 수도 있겠다는 반성이 든다.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LG화학과 얘기해봤지만, 무엇 때문에 사고가 났는지 지금도 모른다. 그 사고 이후에도 화학제조업체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서너 번 반복돼 꼭 필요한 정책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2019년 5월 13일 당시 폭발사고가 난 화학제품 생산공장 모습. 폭발과 함께 붙은 불은 10분 만에 진화됐다. ⓒ 제천소방서     제외된 공약 가운데는 농민 기본소득제도를 검토하겠다는 내용도 있었다. ‘도입’이 아니라 ‘검토’가 공약이었지만 이행되지 않았다. 결국 충청북도가 올해부터 ‘농업인 공익수당’으로 농가당 연간 50만 원씩 지급하기로 했다. 충북도와 기초지자체가 4 대 6 비율로 재원을 부담한다. 이 시장은 “농민수당은 장단점이 있어 꼭 좋은 정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 다만 “(충북도가 추진을 결정했을 때) 제일 먼저 가서 (협의안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장애인 정책 적극적, ‘탈시설’은 미흡 “제천에 여러 장애인 보호센터가 있지만, 중증도가 심한 장애인은 잘 안 받아요. 경증 위주로 받아요. 화가 났어요. 왜 그러는지. ‘이 사람들 진짜 사회복지 할 뜻이 없는 것 아냐?’라는 생각도 했어요. 잘못된 생각이죠. 제가 장애인 보호센터를 한다고 해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제대로 돌보려면 사회복지사 한 명당 장애인 2.5명을 돌봐야 하고, 중증장애인은 일 대 일로 봐줘야 하는데 그 돈을 누가 줘요. 구조적으로 모순이죠.” 이상천 시장이 설명하는 장애인단기보호센터 설립 이유다. 장애인단기보호센터는 지난해 제천시 청전동에 문을 열었다. 시설 이용 정원은 10명으로, 복지사 10명이 일 대 일로 돌본다. 이 공약은 애초 제천시가 먼저 나서 국비 도움 없이 전액 시비로 조성하려 했다. 추진 과정에서 국비 2억 원을 지원받았고 시비를 중심으로 모두 10억 원이 투입됐다.    이 시장은 장애인 복지 분야 성과에 대해서는 ‘의회에서도 노터치’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시장이 관심을 가지고 아끼는 사업이라는 뜻이다. 이 시장은 정부 지원이나 의회 지적 없이 “시장이 먼저 치고 나가는 건 그래도 잘하는 것 같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하지만 시설 거주 장애인의 자립 지원(탈시설) 공약의 성과가 미흡하다는 비판에는 임기 초기 뚜렷한 ‘방향성’을 잡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이 시장은 장애인 4명이 함께 살 ‘공동생활가정’ 공동주택 한 곳을 올해 안에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제천시내 9개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230여 명과 비교해 지원하는 규모가 작고, 이마저도 장애인이 자기 소유의 집에서 사생활을 누리는 온전한 의미의 탈시설과 거리가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사회복지 분야가 공부해보면 무지 어렵고 복잡하다”며 웬만큼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자신도 “자립 지원정책에 대한 개념이 없었을 뿐, 관심이 부족했던 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탈시설도 앞으로 챙겨야 할 사업이라 생각한다. 시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장애인단기보호센터에서 장애인은 짧게는 몇 시간 머물거나, 길게는 6개월까지 거주할 수 있다. 센터는 일상생활 훈련, 재활도 지원한다. ⓒ 제천시   청년 지원으로 인구정책 완성 “신문을 봤어요. 헝가리 정부에서 우리나라 돈으로 4천만 원을 출산 가정에 주는데 출산율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다는 거예요. 제천시에서 아이를 낳으면 지원해주는 것들이 이것저것 엄청 많은데, 연간 40억 원 돼요. 그걸 폐지하고 통합해서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지원정책을 하려니 연간 75억 원 정도 필요한 거예요. 30억 원만 더 있으면 되겠다 싶어서 이 사업을 시작했어요.” 이상천 시장은 파격적인 혜택을 담은 출산장려 공약을 이행하고 있다. ‘3쾌한 주택자금 지원사업’이다. 신생아 출생일로부터 1년 이상 제천에 거주한 사람이 셋째까지 낳으면, 주택자금으로 모두 5,150만 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지난 2020년 말 ‘주택 및 출산자금 지원 조례’가 마련됐다. 이 시장은 “3쾌한 사업을 시행할 때 보건복지부에서 압력을 행사했다”고 털어놨다. 큰 금액을 지원하다 보니 다른 지자체와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는 “3쾌한 사업을 막을 게 아니라 오히려 정부에서 시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런데 이 정책이 ‘내가 돈을 받기 위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출산 의지를 높이는 데까지는 연결되지 않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제가 다음 선거에서 중점적으로 제시할 공약이 청년 대책이에요. 청년들한테 연간 300만 원 정도 주거비를 주는 거예요. 그리고 창업 보증 제도도 하려고 해요. 시에서 5천만 원 정도 대출을 보증해주는 거죠.” 이 시장은 현재 공약을 보완해 정책효과를 높이겠다며 재선 출마 의지를 내보였다. 특히 실질적인 인구 증가나 유지를 위해 청년층을 지역사회에 붙잡아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세명대와 대원대 졸업생들이 제천에 정착하면 정착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며 “다만 무임승차할 학생들이 많을까 고민”이라고 말했다. 정착 지원금과 관계없이 어차피 지역사회에 머무를 졸업생도 있을 텐데, 이들에게까지 재정이 불필요하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시내 주변부에 흩어져 있는 여러 장애인 복지시설과 관련 단체를 한곳으로 모아 장애인 복합센터를 만들겠다고 했다. 사회와 동떨어진 곳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시내 가까이 위치를 잡을 계획이다. 그는 “예산이 조금 들어가긴 하겠지만, 많은 금액은 아닐 것”이라며 “수영장이나 사회인 야구장 하나 짓는 100억 원 정도면 장애인 삶의 질을 높이는 총괄센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화학제조업체 화학물질 정보 공개 제도화에 대해서도 “시장이 할 수 있는 정책이라면, 다시 검토해서 다음 선거 때 다시 공약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단비뉴스> 보도를 허락을 구하고 중복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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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1
  • 수려한 제천 산들의 수난시대
    ‘자연치유도시’를 표방하는 충북 제천시는 매년 관광객만 수백만 명이 방문한다. 제천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도시로서 특히 의림지, 박달재, 월악산 등 ‘제천 10경’이 널리 알려졌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무리하게 산을 깎아 택지를 조성해 집을 짓거나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등 지역 곳곳에서 난개발이 성행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제천시 난개발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단비뉴스> 취재팀은 지난 4월 21일부터 약 한 달여에 걸쳐 제천시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요즘 저렇게 산 깎아낸 곳이 많아. 볼 때마다 안타깝지. 제천의 자랑 중 하나가 좋은 경관인데 솟아 있는 나무를 다 깎아버리니…”       ▲ 5월 5일 제천시 신백동 동중학교 근처 한 마을 입구에 ‘부동산 매매’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다. ⓒ 박성준   지난 5월 5일 제천시 신백동 동중학교 인근에서 만난 이동하(66) 씨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동중학교에서 서당골 방향으로 522번 도로를 타고 가다 왼쪽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부동산 매매’라고 적힌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수천 그루 나무는 온데간데없고 9900여㎡(3000평) 크기 부지가 조성돼 있었다. 가장자리 비탈진 곳에는 베어낸 나무와 쓰레기 등 폐기물이 나뒹굴었다.       ▲ 1년 넘도록 공사가 진행되지 않은 채 방치된 산지. ⓒ 박성준   약 3년 전 주차장 용도로 산지전용 허가가 났지만 공사비 문제 등으로 1년 넘게 공사가 중단됐다. 이곳 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는 김육한(59) 씨는 “평생 같이 자라온 산을 깎아내는 거 보면 마음이 안 좋다”며 한숨을 쉬었다.  “(개발 관련해) 주민들 다 불만이 있습니다. 나무 깎아 놓고 저대로 내버려 두니 평소에는 먼지 날리고 비 오면 집 안까지 흙이 쓸려내려 옵니다. 작년 장마 땐 흙이 보일러실까지 밀려 들어와 아직도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어요.”   허울뿐인 국토계획법, 관리 안 되는 ‘관리지역’ 정부는 2003년 비도시지역 난개발 문제가 심각해지자 국토이용계획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 개편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국토계획법)’은 난개발 원인이 된 준도시지역과 준농림지역을 ‘관리지역’으로 통합했다. 비도시지역의 소규모 난개발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관리지역은 난개발의 온상지가 됐다.   국토계획법은 토지를 용도에 따라 도시지역, 관리지역, 농림지역, 자연환경보전지역으로 나눈다. 용도 지역은 건폐율과 용적률, 건축물의 종류 등에서 차이가 있다. 도시지역은 주거·상업·공업·녹지지역으로, 관리지역은 보전관리·생산관리·계획관리 지역으로 구분한다. 관리지역은 명확한 목적을 갖는 도시지역·농림지역·자연환경보전지역 간의 완충지역인데 보전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개발의 목적도 가진 중간 성격의 용도 지역이다.   관리지역으로 지정된 경우 지역에 따라 필요한 보전조처를 하거나 개발이 필요한 지역에는 계획적인 이용과 개발을 도모해야 한다. 관리지역 중에서도 계획관리지역은 개발을 염두에 둔 지역이다. 계획관리지역은 도시지역으로 편입이 예상되는 지역이나 자연환경을 고려하여 제한적 이용∙개발을 하려는 지역으로서 계획적∙체계적 관리가 필요한 지역을 말한다.    계획관리지역의 건폐율은 40%로 보전·생산관리지역의 2배이고, 용적률도 100% 이하로 60~80% 이하인 보전관리·생산관리지역보다 관대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통해 정하는 건축물 제한에서도 계획관리지역은 보전·생산관리지역과 달리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하고 있다. 네거티브 방식 규제는 ‘건축할 수 없는 건축물’을 빼고 모두 지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규제가 상대적으로 적은 계획관리지역은 난개발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2018년 국토연구원이 발행한 ‘국토정책 브리프’는 토지이용 관리체계의 문제점으로 비도시지역에 관한 공간관리 계획이 부족하고, 개발과 보전의 원칙이 불분명하며, 비도시지역 관리의 권한과 책임이 분산돼 있다고 지적했다. 비도시지역은 농업진흥지역이나 보전산지가 아니면 개발행위허가를 우선 적용하여 난개발의 원인이 된다.   ‘브리프’에 따르면 1993년 이전까지 비도시지역에서 개발 가능한 용도지역은 전체 국토면적의 1.7%에 불과했지만, 1994년 준농림지역(26.8%)이 과다 지정된 뒤 2015년에는 관리지역이 25%에 이르렀다. 개발행위허가는 매년 증가했으며, 81.6%가 관리지역에서 일어났다. ‘2015 제천도시관리계획’에 따르면 제천시의 관리지역은 전체면적의 32.5%에 이른다. 계획관리지역은 11.4%다.       ▲ 고명동 산 55-15 인근의 과거(왼쪽)와 현재(오른쪽). 과거에는 나무로 우거진 숲이었지만 개발 중인 지금은 숲이 거의 사라졌다. ⓒ 카카오맵, 네이버지도   산 깎아 개발 시작, 속도는 지지부진  단양로와 맞닿아 있는 제천시 고명동 산 55-15 근처는 계획관리지역에 속하는 임야 지역이다. 단양로를 따라 이동하다 보면 산을 깎은 상태로 방치된 현장을 볼 수 있다. 중장비를 세워두는 주기장과 창고를 건설하겠다며 허가를 받아 공사를 시작했지만, 현재는 중단했다. 나무가 있던 자리에 포크레인과 같은 중장비와 건축 폐기물이 있다. 지난 17일 취재팀 전화 인터뷰에서 제천시청 관계자는 “주기장이랑 창고로 허가를 받은 곳이지만 코로나19 이후 자금이 모자라 공사가 멈춰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제천시 고명동 산 55-15 인근 지역은 창고와 주기장 건축을 목적으로 허가가 났다. 코로나19 이전에 허가가 났지만, 공사는 중단 상태이고 건축 폐기물 등이 현장에 방치돼 있다. ⓒ 김현주   세명대 정문 근처 세명공원 뒤편도 임야지역을 깎아 주택을 짓기 위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 지역도 계획관리지역이지만 2년 전 허가를 받아 공사를 시작했다. 지자체는 임야지역의 경사도, 수목밀집도 등을 따져 허가를 내준다. 세명공원 뒤편은 경사도가 15~20도 정도이고 산사태정보도 3∙4등급 정도라 기준에 따라 개발허가가 났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폭우 때 공사장 흙이 떠내려와 세명공원 일대를 뒤덮었다. 이 지역은 세명대 한의과대학 건물과 마주보고 있다. 한의과대학 본과 1학년 김한영 씨는 “다른 학생들과 공사 현장을 보면서 민둥산이라고 말한다”며 “보기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 세명공원 뒤편 개발 지역에서 세명대를 바라본 모습. 왼쪽 회색 건물이 세명대 한의과대학이다(위). 아래는 세명대 정문 인근을 개발하는 모습을 세명대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주변 우거진 산과 대비돼 민둥산이 눈에 띈다. ⓒ 김현주   한 번 훼손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산림   한번 파헤친 산은 복구가 어렵다. 제천시 대랑동 276 일대는 산림청이 태양광 난개발에 제동을 걸기 전에 개발됐다. 이곳에는 태양광 패널이 6만5000㎡에 걸쳐 설치돼 있다. 2017년 태양광 설치 목적으로 개발행위허가를 받았고 2018년에 공사를 마쳤다. 산의 나무를 깎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 제천시 대랑동 276 일대 2012년 위성사진(왼쪽). 2017년에는 산에 있는 나무를 거의 다 잘라내 휑한 모습으로 변했다(오른쪽). © 카카오맵       ▲ 2021년 현재는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다. © 카카오맵   산림청은 2018년 12월 산지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보전산지 태양광 시설 설치를 금지했다. 산지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벌목과 같은 산림 훼손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보전산지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할 수 있었다. 현행 산지관리법은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설비 설치를 위한 산지전용은 허용하지만, 태양에너지 설비만은 예외로 두고 있다. 그러나 이미 개발된 산지는 복구할 수 없다.   제천시 대랑동 276은 잡종지로 분류돼 있다. 태양광 패널 설치 전까지 이 지역의 절반이 넘는 면적(3만9000㎡)은 임업용산지에 해당하는 보전산지였다. 2019년 6월 제천시는 ‘산지관리법’ 제6조에 따라 다른 용도로 전용된 보전산지에 관해 보전산지 지정을 해제한다고 고시했다. 이에 따라 이 구역은 임업용산지에서 준보전산지가 됐다. 준보전산지는 보전산지 외의 산지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산지전용에 관한 행위제한을 비교적 적게 받아, 주택이나 공장 등 개발용도로 이용할 수 있다. 국토계획법에 따르면 계획관리지역에 해당한다.   제천시 봉양읍 미당리 산70은 원래 하나의 산이었으나 택지분할로 10개로 쪼개졌다. 이 중 5곳(산70-2, 3, 7, 8, 10)은 산에 있던 나무를 모두 밀어버렸다. 작년에 봉양읍 미당리 산70-1은 주택 허가를 새로 받아 이곳의 나무들도 곧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제천시 도시관리계획에 따르면 이곳도 계획관리지역이다.    봉양읍 미당리 산70-3과 70-10은 아직 허가가 나지 않았는데도 개발을 한 상태다. 불법 행위는 제천 인근 마을 주민이 민원 신고를 하면서 드러났다. 지난 18일 취재팀의 전화인터뷰에서 제천시청 담당자는 “우선 구두로 개발을 하지 말라고 전했다”며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제천시 봉양읍 미당리 산70 일대. 노란별과 초록별 지역은 개발행위허가를 받은 곳이고, 빨간별 지역은 개발행위허가 없이 파헤친 곳이다. © 카카오맵   빼어난 경치 훼손에 지역 주민은 ‘속앓이’  ‘알미부락’이라고 불리는 두학동 5통 일대는 기존 마을 뒤편으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마을 초입에서부터 산을 깎고 멀쩡한 나무들을 벌목하는 공사가 진행중인 것을 볼 수 있었다. 취재진이 공사 현장으로 가까이 가자 컨테이너로 된 택지 분양 상담실이 있었다. 택지 분양을 홍보하는 현수막도 곳곳에 걸려 있었다.         ▲ 알미부락 인근 개발지역에 자세한 내용의 분양 광고 현수막이 걸려있다. © 김계범   지난 5월 3일 전화인터뷰에서 이 마을에 거주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ㄱ 씨는 “자연이 훼손되고 공기가 좋은데 저렇게 난개발을 막 해가지고 좋지 않다”며 “마을에서도 말이 많은데 동네에 있던 사람이 나가 살면서 개발을 한다고 그러니 심하게 얘기도 못 하고 속앓이만 한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산을 사서 택지 분양을 해 외지인에게 분양하는 것이라며 “경치 좋고 공기 좋은 지역의 산을 깎아서 저렇게 해놓으니 지금 살던 사람만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두학동 5통 김용안(65) 통장은 “그 사람들은 분양해서 팔면 그만“이라며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주민들만 본다“고 말했다. 그는 ”수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연환경도 안 좋아졌다“며 ”마을 뒷산을 파헤쳐서 작년 여름에도 피해가 있었고 그 뒤에 소나무도 굵은 것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다 캐내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알미부락 지역 전체 군데군데 산마다 다 건드려놨다”며 난개발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18일 전화인터뷰에서 제천시청 담당자는 두학동 1096-4 인근 지역에 관해 “처음에 주기장으로 허가가 들어왔는데 앞에 집들이 많다 보니 차량이 왔다갔다하면 시끄럽고 마을에 피해를 줄 거 같아서 야영장으로 용도변경해서 신청했다”며 “마을에 얼마 전에도 가고 서너 번 가서 주민들과 이야기해 봤는데 반대하는 말씀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수해에 따른 피해를 알고 있냐는 질문에 그는 “작년에는 공사하다가 배수를 제대로 안 한 것 같다”며 “이번에는 배수 작업 좀 제대로 해달라고 했고 그래서 밑으로 물이 안 흐르게 둑방을 쌓았다”고 답했다.        ▲ 두학동 5통 인근 마을 주민들은 난개발에 따른 피해와 자연경관 훼손을 우려하고 있다. © 김계범   미흡한 제도, 실효성 없는 ‘경관법’ 환경단체들은 난개발 원인이 미흡한 제도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자체가 너무 쉽게 개발허가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18일 전화 인터뷰에서 환경안전건강연구소 김정수 소장은 “난개발은 경관과 더불어 산림의 많은 기능을 파괴한다”며 “막을 수 있는 규정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난개발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는 최병성 목사도 18일과 19일 전화 인터뷰에서 중앙정부 차원의 국토이용에 관한 정책이 미비하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지자체에만 맡겨 둘 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분명한 지침이 나와야 한다”며 “큰 사업은 도에서 실시하지만 작은 개발들은 지자체에서 진행하다 보니 방치되는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난개발은 전국적인 추세로 서울 집값이 비싸 지방으로 와서 전망 좋은 산을 깎아 개발하는 것”이라며 “제천 역시 둘러봤는데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관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관법은 독자적으로 실행하기에는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토지 개발에 규제가 필요할 때 이를 강제하기 위한 수단이 경관법에 규정돼 있지 않다. 최 목사는 “경관법은 개발법의 하위법이어서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법”이라며 “경관법 자체에 경관을 보전할 수 있는 근거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경관법에는 국가 차원의 정책방향 제시와 정부의 선도적 역할이 명시돼 있지 않아 통합적 경관관리에 어려움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8일 전화 인터뷰에서 충북환경운동연합 김다솜 활동가는 “많은 지방자치단체에서 경관법에 근거해 경관계획을 세우고 있으나 실행력에 한계가 있다”며 “경관법을 포함해 산지개발 경사도에 관한 규정을 강화하는 등 종합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충북 제천시와 단양군 경계에 있는 한 산은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을 채굴하느라 산봉우리까지 깎여 나갔다. 제천∙단양 일대는 석회석 채굴을 위해 산을 훼손해왔지만 최근에는 전망 좋은 택지개발을 위해 산기슭을 마구 깎아내고 있다. ⓒ 박성준         이 기사는 <단비뉴스> 보도를 허락을 구하고 중복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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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특집
    2021-06-18
  • 제천 학생은 못 먹는 지역 친환경 농산물
    충북 제천은 농촌지역이지만 공공급식체계 부실로 학생들이 신선한 지역 친환경 농산물을 먹지 못하고 있다. 작년 9월까지 학교에 공급되는 친환경 농산물은 쌀과 잡곡 위주였고 신선한 채소는 없었다. 제천은 지난해 10~12월까지 엽채류 등 친환경 농산물 4개 품목을 6개 학교에 시범으로 공급했다. 올해부터는 10개 학교에 9개 품목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2021년 기준 제천에서 학교급식을 직접 조리하는 학교는 32곳인데 22개 학교 학생들은 여전히 기존 방식대로 재배한 관행 농산물을 먹고 있다.   친환경 학교급식 확대는 문재인 정부 ’국가 먹거리 종합전략’ 중 하나다. 이 전략은 안전한 먹거리 보장, 지속가능한 농업,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목표로 한다. 친환경 학교급식은 학생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지역 친환경 농가의 판로를 안정적으로 마련하는 구실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또는 지자체 차원의 공공급식체계가 필요하다.   첫발 뗀 제천 공공급식 제천은 지난해부터 공공급식체계를 마련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작년 7월 ‘제천시 지역농식품의 공공급식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공공급식체계를 갖추려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례에 따라 제천은 올해부터 공공급식지원센터를 거쳐 농산물을 현물로 지원한다. 올해 1월부터 ‘제천하늘뜨레조합공동사업법인’(조공법인)이 공공급식지원센터 구실을 하고 있다. 조공법인은 제천 농산물 통합마케팅과 유통을 전담할 목적으로 작년 1월 설립됐다.       ▲ 왼쪽은 올해부터 공급하는 9개 친환경 농산물 품목이다. 오른쪽은 4월 19일에 시범학교 중 하나인 제천 명지초등학교가 사용한 친환경 농산물 품목이다. ⓒ 임효진   올해 3월부터는 처음으로 10개 학교에 9개 품목 친환경 농산물을 무상으로 지원했다. 시범학교는 기존 급식 예산에 더해 친환경 농산물을 지원받는다. 시범학교로는 초등학교 3곳(화산초, 장락초, 중앙초), 중학교 3곳(제천중, 제천동중, 제천여중), 고등학교 4곳(제천산업고, 제천상업고, 제일고)이 있다. 친환경 농산물로는 감자, 양배추, 얼갈이배추, 무, 열무, 시금치, 양파, 대파, 아욱이 들어간다. 그중 양파와 대파는 7월 이후 공급될 예정이다.   취재 결과 친환경 농산물 공급 학교로 선정된 10개 학교 영양교사가 답한 친환경식재료 사용 비율은 30~50% 수준이었다. 영양교사들은 공통으로 친환경 농산물 무상 지원을 장점으로 꼽았다. 이전에는 한정된 예산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 친환경 농산물을 무상으로 지원받으면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폭이 늘어났다. 남정여 제천중 영양교사는 “지원받는 농산물로 식재료비를 줄일 수 있어서 다른 부분에서 급식의 질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영양교사들은 대체로 친환경 농산물 품질에 만족했다. 함미애 장락초 영양교사는 “보내주는 농산물은 신선한 편”이라며 “상태가 안 좋으면 바로 교환해준다”고 말했다.   친환경 농산물 품목을 늘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남정여 교사는 “품목이 몇 가지 안 돼 메뉴가 한정되어 있다”며 “오이 같은 것은 제천에서 많이 재배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품목이 늘어나면 메뉴도 다양하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부터 친환경 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제주도는 상추, 브로콜리, 파프리카 등 다양한 채소류를 공급하고 있다. 채소류 말고 버섯과 과일도 학교급식으로 들어간다.       ▲ 제천 명지초등학교 급식조리소에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다. ⓒ 임효진       ▲ 5월 7일 명지초등학교 급식으로 나온 햄버거 재료는 양배추, 양파, 토마토 등 친환경 농산물이 사용됐다. ⓒ 임효진   제천 학교급식 친환경 식재료 사용 비율은 다른 시‧도에 견주어 여전히 낮은 편이다. 제천교육지원청은 ‘2021 학교급식 기본방향’에서 친환경 식재료를 32% 넘게 사용할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친환경 식재료를 70% 넘게 사용하도록 한다. 서울에서 학교급식으로 공급되는 전체 농산물 대비 친환경 농산물 비율은 2017년에 61.2%였다. 남정여 교사는 “지금은 쌀과 잡곡, 채소류까지 포함해서 35% 이상 나오면 높게 나오는 거”라며 “올 하반기부터 대파와 양파도 공급되면 35%를 넘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2018년 친환경 농산물 학교급식 현황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학교급식으로 공급되는 전체 농산물 중에서 친환경 농산물이 차지하는 비율은 55%였다. 전남(91.5%)과 제주(88.3%)는 전체 학교를 대상으로 친환경 농산물 공급을 지원하고 있어 친환경 농산물 사용 비율이 높다.   갈 길 먼 공공급식체계 현재 제천 공공급식체계는 부실하다. 지난해 제천은 ‘충청북도 공공급식센터 건립사업’에 공모해 괴산군과 경합하다가 졌다. 괴산군은 지역 먹거리 생산-유통-소비 기반이 잘 갖춰져 있다는 평가를 받아 최종 선정됐다. 제천이 떨어진 이유는 관행적 도매시장 중심 유통구조 때문이다. 일반 업체가 학교급식을 공급하고 있다.   작년 11월에 나온 ‘제천형 학교급식 시스템 구축 연구용역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제천 학교급식은 학교급식지원(유통)센터가 없어 일반 업체의 경쟁입찰 공급체계로 운영된다. 개별 학교 단위 입찰 방식은 식재료의 품질을 낮춘다. 경쟁입찰 방식이 식재료 단가를 올리기 때문이다. 보고서는 시가 나서서 학교급식 공급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공공급식 유통망이 부실해 제천 친환경 농가들은 제천이 아닌 다른 시·도 학교급식에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하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급식을 공급하는 친환경 농가가 피해봤다는 보도가 이어졌는데도 제천 친환경 농가가 코로나19 피해를 입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손해를 본 친환경 농가는 저장성이 낮은 채소를 급식으로 공급하는 농가였다. 제천에서는 친환경 쌀과 잡곡만 급식재료로 공급됐다.   제천에는 학교급식으로 공급할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이 충분하다. ‘제천시 친환경 농산업 기본 자원 조사’에 따르면 제천시 친환경 농산물 인증 작물 생산량은 2019년 기준 벼가 460.3톤으로 가장 많고, 채소 364.9톤, 서류(감자, 고구마) 278.8톤 순이었다. 학교급식으로 공급할 수 있는 친환경 농산물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는 의미다.   보고서에서 제천 친환경단체들은 공통으로 공공급식센터 등 거점 공간 부재를 문제로 지적했다. 이들은 지속적으로 농산물을 소비할 수 있는 유통망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환 제천친환경농업연합회 대표는 “친환경 쌀 공급은 십 몇 년 전부터 했지만 채소류는 그러지 못했다”며 “13년여 전부터 충주시와 청주시 학교급식을 공급했는데 제천에는 공급을 못했으니 어이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제천 학교급식으로 들어가는 얼갈이 배추. ⓒ 학고을유기농원   학교급식에서 친환경 식재료가 사용되는 비율은 공공급식체계 유무에 따라 달라진다. 2017년 기준 전국 지자체 245개 중 89개(36.6%) 지자체는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친환경 농산물 공급을 목적으로 운영된다. 광역지자체 중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곳은 6곳이다. 학교급식지원센터 운영 비율은 경북이 96%로 가장 높다. 경북 대부분 기초지자체는 학교급식센터를 운영한다. 경북 친환경농산물 사용 비율은 68%로 전국 평균보다 높다. 보고서가 작성된 2017년까지만 해도 충북은 광역지자체 차원의 친환경 급식 예산 없이 기초지자체 자율에 맡겼다.   시설 갖추고 품목 늘려야 현행 공공급식 시스템에서 조공법인은 친환경 농가와 학교 사이에서 거점 구실을 한다. 학교 주문을 친환경 농가에 전달하고 운송 차량을 보낸다. 지금까지 운송이 늦은 적도 없고, 식재료 상태가 안 좋으면 바로 교환해줄 정도로 잘 운영됐다. 문제는 조공법인의 구실이 ‘운송’에 그친다는 점이다. 친환경 농가와 학교를 연결하는 유통만 담당한다. 친환경 농산물 검수도 하지만 형식적 절차에 그친다. 윤도철 조공법인 팀장은 “일단 외관 위주로 본다”며 “친환경 농산물은 외관상 관행 농산물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학교에서는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 조공법인이 거점 구실을 하는 제천 공공급식체계. ⓒ 제천시하늘뜨레조합공동사업법인 계획서   현재 조공법인은 농산물산지유통시설(APC: Agricultural Products Processing Center)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APC는 선별, 포장, 저장, 출하 등을 통해 농산물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일을 처리하는 시설이다. 재포장 취급자 인증을 받은 공공급식센터가 제천에는 없어 친환경 농가가 직접 소분해 운송 차량에 실어 보내고 있다. 친환경 농산물을 작은 단위로 나누어 포장하거나 세척∙절단 등 단순 처리하여 포장하기 위해서는 ‘친환경농산물 재포장 취급자 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천 친환경 농산물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학고을친환경영농조합법인이 농산물 포장과 소분을 맡고 있는 실정이다. 김동환 학고을 대표는 “공공급식지원센터에 APC 시설이 생기면 우리는 생산만 해서 가져다주면 끝”이라며 “지금은 생산 농가에서 소분하고 차량에 실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머리가 보통 아픈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지역에 생산되는 농산물을 애들한테 안 먹일 수 없기 때문에 한다”고 토로했다.   APC가 없어 시범 학교도 불편을 겪는다. 전처리 식품은 세척과 손질이 모두 되어 있는 반면 친환경 농산물은 급식소에서 직접 세척하고 손질해야 한다. 박은순 명지초등학교 영양교사는 “조리사들 일이 더 많아졌다”며 “아이들을 위해 배려해 달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명지초등학교는 공급되는 친환경 식재료 중에 감자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박 교사는 “감자 탈피기가 없어 감자를 다듬을 엄두가 안 나서 감자는 어쩔 수 없이 전처리 식품을 사용하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남정여 제천중 영양교사는 “전문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제품 포장 상태가 미흡할 때가 있다”며 “세척해 달라고 요청은 하지만 협의를 통해 개선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충북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공모사업인 ‘2020년 지역 푸드플랜 구축 지원사업’에 선정되고나서 공공급식체계 구축에 착수했다. 지난해 괴산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먹거리통합지원센터를 현재 2곳(진천군, 음성군)에서 10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제천시청 농촌상생과 로컬푸드팀 김동국 주무관은 “제천에서 급식으로 들어가는 것들은 지역 농산물이라기보다는 공판장에서 사다가 공급하는 것들이 많다”면서 “시 예산만으로 공공급식센터를 짓기 힘들어 연말에 충북 공모사업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단비뉴스=임효진 기자)         이 기사는 <단비뉴스> 보도를 허락을 구하고 중복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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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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