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1-20(수)

존엄하지만, 존엄하지 않은 장애인의 삶

[기고] 유장군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특수교육학과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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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2.02 13:28   조회수 : 91,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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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장군 학생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라는 강연 프로그램에서 학교 교사가 강연하는 것을 볼 때면, ‘언젠간, 나도 교사가 되면 저렇게 멋진 강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최근에 ‘달지’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초등학교 교사가 꿈에 관해 강연하는 모습을 보며 그 생각을 확고하게 다졌다. 얼마 전,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선배가 저녁 식사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에 “평소에는 길이 불편하다는 걸 느끼지 못했는데, 너랑 다녀보니 알게 됐어”라는 말을 했다. 농담으로 '그럼, 내게 고마워해!'라고 답했지만, 그가 한 공감에 내가 오히려 더 고마웠다. 일상 속 비장애인이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을 장애인이 직접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장애인은 평범하다

 

언론에 비치는 장애인 이미지는 불쌍한 이미지와 장애를 극복한 이미지로 나눠진다. 평범한 이미지를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언제쯤 대중과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고 존엄하지만 존엄하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을까.


몇 년 전 특수학교 선배인 김원영 변호사가 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 큰 화제가 됐다. 특히 ‘잘못된 삶 소송’ 부분은 우리 사회에 묵직한 담론과 고민을 던졌다. 임신 시에 태아에게 장애가 있는 것을 인지했다면 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그 당시 정확한 진단을 못한 의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다룬 내용을 읽은 뒤 ‘장애인으로 출생한 것이 손해인가?’라는 물음 앞에 섰다. 복합적인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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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영 변호사가 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표지. ⓒ 사계절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므로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


‘모든 사람은 법 앞에서 평등하며, 어떤 차별도 없이 똑같이 법의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모든 사람은 이 선언에 위배되는 그 어떤 차별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러한 차별에 대한 그 어떤 선동 행위에 대해서도 똑같은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7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0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제11조 ①항)


세계인권선언과 국내 헌법은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평등하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을 볼 때마다 불편하다. 조항이 선언에만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이 명제가 참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애인에게는 ‘존엄하고 평등하다’는 명제가 그림의 떡이다. 현실에서 장애인은 혐오, 차별, 배제, 동정 등의 대상으로 인식된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욕망, 매력, 섹시함이 있는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불편함을 호소할 권리

 

나라 전체가 외환위기를 겪던 어린 시절, 가정이 해체되며 장애인 생활 시설에서 성장했다. 자연스럽게 학창 시절도 특수학교에서 보냈다. 그때는 장애에 관한 인식과 열등감이 없었다. 조금만 노력해도 전교 1등은 물론이고, 학생회장도 할 수 있었다. 얼마 뒤 장애인은 사회에서 불편함을 당연히 견뎌내야 한다는 풍토가 세상 곳곳에 있음을 느꼈다. 장애인으로서 겪는 불편에 관해 얘기하는 나에게 한 시설 종사자는 ‘수년 동안 장애인으로 살아왔는데, 그 정도는 이제 익숙해질 때 안 됐어?’라는 말을 스쳐 지나가듯 했다. 장애인이니까 불편함을 견뎌야 한다는 익숙함에서 오는 편견은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특수학교생활을 마치고, 대학에 입학했다. 초라했다.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다.  고독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에 강한 반기를 들고 싶었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을 느낀다. 비장애인처럼 외모를 꾸며 학교를 누비고 싶었다. 그들처럼 우아하게 한 손에는 책, 다른 한 손에는 음료나 커피를 들고 걸어보고 싶었다. 휠체어로 캠퍼스를 활보하는 것은 섹시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 의지로 표정을 조절할 수 없다는 사실도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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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욕망, 매력, 섹시함이 있는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이다. ⓒ Pixabay

  

학년이 올라가 대학원에서 특수교육에 관해 연구하며 과거에 했던 생각이 잘못됐음을 반성했다. 시험을 위해 뇌성마비 원인과 특성을 암기하기에 급급했던 학부 때와 달리 장애를 의학이나 특수교육 관점이 아니라 예술이나 다양성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내 몸이 다시 매력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달달 외우기만 했던 이효신 교수의 ‘자폐성 장애아 교육’ 수업 내용이 떠올랐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양이 있듯이 아이들도 다양합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동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일상 속 차별과 혐오

 

나는 말장애도 있다. 말장애(Speech Disorder)는 언어장애(Language Disorder)와 구분된다. 언어 체계에 관한 지식 구조가 형성되지 않은 지적장애 등을 일컫는 ‘언어장애’와 달리 ‘말장애’는 청각기관이나 신경계 손상으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보이는 청각장애, 뇌성마비 등이 이에 해당된다. 아마 말장애만 없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무시당하거나 ‘병신’ ‘병자’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익숙하다. 도우미 친구와 같이 다니면, 나에 관한 질문을 내가 아닌 도우미 친구에게 한다. 나와 대화하는 것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도 보곤 한다. 처음에는 이러한 것이 낯설었다. 지금은 삶의 일부라 생각한다. 법적으로 차별이라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나도 모르게 장애를 탓하게 된다. 뇌성마비와 말장애는 나를 둘러싼 많은 부분 중 내 정체성을 대표하는 큰 부분이 돼버렸다.


얼마 전 지역의 한 평생교육센터에 특수교사로 지원했다. 지원서류에는 인적 사항을 써야 했다. ‘장애 유무’를 기술하는 것이 불편한 진실로 다가왔다. 물론 경쟁이 심한 취업 시장에서 취약한 이들에게 주는 ‘가산 점수’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원자가 장애인임을 인지하는 순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뽑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등급을 나누는 한국에서 중증 장애인은 더 불리하다. 서류평가가 끝난 뒤 별도로 관련 서류를 제출하게 함으로써 평가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수자 삶에 귀 기울여야


장애인으로 살아가며 삶을 마치고 싶을 때가 많다. 차별과 편견 속 존재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영혼의 자유를 얻고자 수없이 죽음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삶을 마치면 사회 변화는 없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한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을까? 이 땅에서는 구현되기 어려운 담론일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장애인과 비장애인 임금 격차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노동자가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임금을 명시한 최저임금법 제7조는 장애인을 예외 대상으로 둔다. 장애인고용공단이 2018년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장애인 중 최저임금을 보장받는 비율은 29%에 불과했다. 문명과 자원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이게도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불평등은 심해질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질 좋은 상품을 더 많이 생산하는 사람이 자원을 독식하는 사회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을 포함해 사회적 소수자의 삶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이 받아들이는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다. 하지만 불평등 사회구조를 바로잡고 소수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지 않으려면 이러한 과정이 필요하다. 존엄하고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특별한 세상을 마음껏 꿈꾸는 게 장애인에게도 익숙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모순 투성이지만, 꿈과 이상이 많은 뇌성마비 청년'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유장군(23) 학생은 대구대학교 초등특수교육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뇌성마비 등 중도 · 중복 장애에 관해 연구 중이다.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99033&PAGE_CD=ET001&BLCK_NO=1&CMPT_CD=T0016)에도 실립니다. <중부저널>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유장군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특수교육학과 석사과정 기자 u_jjang@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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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맨

안녕하세요. 충북 지역 언론 '중부저널' 열정맨, 임지윤 기자입니다.

오늘은 1992년 국제연합(UN)이 지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International Day of People with Disability)'입니다.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특수교육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유장군 학생이 '중부저널'에 기고한 뜨거운 칼럼, '존엄하지만, 존엄하지 않은 장애인의 삶'을 소개하려 합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타고났으므로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조)

세계인권선언과 국내 헌법은 모든 인간이 존엄하며 평등하다고 규정하지만, 현실에서 장애인은 혐오, 차별, 배제, 동정 등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같이 욕망, 매력, 섹시함이 있는 독립적이며 주체적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거죠. 모든 인간이 존엄하고 평등한 사회가 도래할 수 있을까요? 존엄하고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특별한 세상을 마음껏 꿈꾸는 게 장애인에게도 익숙한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jbjn.kr/news/view.php?no=1763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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