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11-24(화)

“아이디어끼리 ‘섹스’해야 새로움 탄생”

[현장] MBC 허진호 PD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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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21 23:10   조회수 : 78,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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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디(PD·방송연출자)는 더 다양한 사람의 얘기를 듣는 게 필요합니다. 반드시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나서 의견 교류를 해야 해요. 아이디어는 이 과정에서 태어나요. 새로운 아이디어 ‘아기’가 나오려면 다른 아이디어끼리의 섹스가 있어야 합니다.”


문화방송(MBC)의 간판 시사교양 프로그램인 과 <세계와 나 W> 등을 연출한 허진호 PD가 20일 오후 3시 충북 제천 세명대 학술관에서 열린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초청 언론인 특강에서 ‘PD에게 필요한 자질’에 관해 이렇게 설명했다. ‘방송사가 원하는 인재: PD 준비의 핵심’을 주제로 한 이날 특강에서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 등 20여 명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마스크를 쓰고 넓게 띄어 앉아 귀를 기울였다. 허 PD는 1995년 MBC에 입사한 뒤 <생방송 화제집중> <타임머신> <불만제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한국방송대상, 푸른미디어특별상, 양성평등상(여성가족부장관상) 등을 수상했다. 


스마트폰 시대, 고민 깊어지는 지상파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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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허진호 PD가 20일 오후 충북 제천 세명대학교 학술관에서 '방송사가 원하는 인재'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민지희 

 

“여기 계신 분 중에 TV 보시는 분 있나요?”


허 PD의 질문에 쭈뼛쭈뼛 손을 든 학생은 2명밖에 없었다. 그는 “<놀면 뭐하니?> <무한도전> 등 지상파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대다수가)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놀라운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급속한 기술 발전이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핵심 동인은 ‘편리함’이다. 15년 전에는 거실에 나가 가족과 함께 TV 편성표를 확인해야 했다면, 지금은 언제 어디서든 자기가 원하는 콘텐츠를 스마트폰으로 보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지상파 PD의 고민은 이 부분에서 깊어진다”며 “과거에는 케이블 방송 몇 개가 경쟁사였다면, 뜬금없이 스마트폰이 생기며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에서 나오는 콘텐츠와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고시장도 TV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했다. 그는 “광고가 빠져나가는 것도 있지만 TV 편성 기능이 기존과 달라졌다”며 “과거에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모든 프로그램을 배치했는데, 이제는 재방송에서 나아가 3방, 4방의 비중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계속 줄어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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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통신위원회가 전국 3945가구의 만 13세 이상 남녀 6375명을 대상으로 2019년 6월 3일부터 8월 9일까지 조사한 ‘2019 방송 매체 이용행태’에 따르면 스마트폰을 ‘주 5일 이상’ 이용하는 비율은 지난해 87.3%로 TV 이용률(75%)을 훨씬 앞질렀다. © 방송통신위원회

 

더 어려워진 방송사 취업, ‘파레토 법칙’ 퇴

 

“취업을 준비하는 여러분에게는 슬픈 소식이죠. 미디어 시장 변화가 사람 적게 뽑는 것으로 나타나니까요.”


허 PD는 ‘파레토 법칙’을 거론했다. 이 법칙은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구성원의 20%가 해당 집단의 성과 중 80%를 책임진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는 “(방송사들이) 과거에는 파레토 법칙을 염두에 두고 10명을 뽑은 뒤 2명의 인재를 기대했다면, 지금은 꼭 필요한 2명만 선별하도록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는 더 어려워진 취업 시장에서 PD가 되려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역량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방송사는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 사이에서 ‘압박 면접’이라 불리는 AC(Assessment Center·역량평가)나 BEI(Behavior Event Interview·역량면접)를 도입했다”며 “과거에는 어떤 개인이 보유한 잠재력 등 ‘능력’ 중심의 절대 평가였다면 이제는 그 사람이 주어진 과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보다 좋은 성과를 끌어올 수 있는지 경쟁 중심의 ‘역량’ 평가로 바뀌었다”고 소개했다. AC와 BEI는 실제 직무와 비슷한 상황의 과제를 부여한 뒤 일정 기간 동안 과제 수행 상황을 관찰하며 역량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독일군 장교나 미국 대사관 직원, 국내 대기업 사원 등을 뽑는 방식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는 “결국 방송사는 ‘일을 잘하는 인재’를 원하는데, 새로 도입한 AC 면접이나 BEI 면접 역시 오류가 많다 보니 인턴 제도가 생겼다”고 말했다. 주요 방송사 중에는 티비엔(tvN)과 에스비에스(SBS) 등이 시행 중이며 MBC는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그는 “인턴은 팀의 일원이 돼 중요한 한 가지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이고 성실하게 매 순간 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기획 회의에서 누군가가 인턴에게 특정 사안에 관한 의견을 물을 때가 기회라고 강조했다. ‘다 좋은 것 같다’ 등의 답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라며 젊은 세대의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조언이다.


시청자 마음 읽고 실무 능력 쌓아

 

“대도서관이라 하면 큰 도서관이라고 아는 사람이 많아요. 작가 중 한 명이 1인 크리에이터를 섭외해야겠다며 대도서관을 부른대요. 저는 대도서관이 뭔지 몰랐죠. 나중에 알았는데, 방송 끝나고 보니 연예인 패널을 다 제치고 학생 100여 명이 모두 사인 받으려고 대도서관에게 가는 거예요. 그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허 PD는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모범생보다 다양한 장소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며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PD를 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와 같은) 방송 종사자들은 일이 바빠서 최근 유행이나 문화생활을 잘 모른다”며 “그래서 후배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힙한(유행에 앞서는)’ 장소에 가보라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들어봐야 시청자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알 수 있다며, 특히 방송사가 2030세대 젊은 인턴에게 원하는 것이 그런 트렌드(시류)를 읽는 역량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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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호 PD가 감독했던 MBC ‘생방송 행복드림 로또 6/45’에 유튜브 1인 크리에이터 대도서관(오른쪽)이 출연했던 모습. © 허진호

 

그는 영상 제작 실무 능력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통 인턴에게 조연출(AD)을 맡기는데, 촬영이나 편집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야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6밀리(mm) 캠코더를 기본적으로 다루고 드론 촬영까지 할 수 있다면 (제작비) 100만 원 정도를 아낄 수 있고, 프리미어 프로나 파이널 컷, 애프터 이펙트 등의 편집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알면 선배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들이 ‘영상취재편집실습’ 등의 수업을 통해 실무 능력을 쌓을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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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강에 참석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생들은 방송사 취업에 관한 고민과 입사 준비에 관한 궁금증 등을 질문으로 쏟아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청중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좌석 거리두기를 했다. © 민지희

 

디지털 미디어 시대, 잘 나가는 PD ‘몸값’ 고공행진

 

“전 세계인이 스마트폰을 갖게 되며 시공간 제약 없이 편리하게 자기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보게 된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 중심’으로 바뀌어요. 하지만 저마다 가진 결핍이 있어요. 그걸 잘 파악해서 재미있는 콘텐츠로 만들면 김태호 PD나 나영석 PD처럼 몸값이 최고로 올라가는 거죠.”


허 PD는 MBC 김태호 PD(무한도전, 놀면 뭐하니)나 tvN 나영석 PD(삼시세끼, 알쓸신잡)의  ‘몸값’이 스카우트 시장에서 크게 뛴 예를 들며, 성공적인 PD가 되기 위한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비록 고시원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더라도 내적인 지식 외에 스타일링(외모연출)에도 신경을 써서 직무에 맞는 인상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성형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컨대 예능PD를 지망한다면 딱딱한 분위기 대신 자유롭고 유연한 인상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두 번째로 그는 지금이라도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잘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4분면에 적어 보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먼저 파악하면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그는 자신이 단어 하나가 기억이 안 나 일주일 넘게 기억해 내려 애썼던 경험을 소개하며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패기’를 강조했다. 네 번째는 일상 속 자연이나 사람 등 주변을 잘 관찰하는 것이다. 허 PD는 “평소에 주변을 관찰하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자꾸 누군가에게 해답을 의존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변을 관찰하고 스스로 사유하는 좋은 방법으로 산책을 권하기도 했다. 다섯 번째로 그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꼽으며 인문학과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1895년 프랑스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제작한 세계 최초의 영화 <열차의 도착>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시청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 열차의 도착 Arrivee dun train a la Ciotat(1895) 영상 Ⓒ 시네마 천국 유튜브 계정

 

"100년 전에는 이 영상을 보고 비명을 지르거나 뒤로 자빠지는 사람도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그렇지 않죠. 경험이 축적된 거예요.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시청자가 특정 영상의 문법이나 원칙,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할 일은 그들이 알고 이해하는 것을 활용해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강에 참여한 라디오 PD 지망생 이예진(24) 씨는 “디지털 콘텐츠로 인한 시장 변화에 따라 채용 방식과 인재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이번에 알게 됐다”며 “앞으로 취업을 준비할 때 필기시험 준비 외에도 영상 제작 실무 능력을 키우는 게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 지망생 조한주(27) 씨는 “언론사 취업 준비 과정에서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면접관을 포함한 시청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비영리 대안 언론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683)에도 실립니다. <중부저널>은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임지윤 기자, <단비뉴스> 민지희 기자 dlawldbs20@naver.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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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맨

안녕하세요. 충북 제천의 지역 언론 '중부저널' 열정맨, 임지윤 기자입니다.

스마트폰을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사용하는 시대에 고민이 깊어지는 지상파 방송과 더 어려워진 방송사 취업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는데요. 허 PD는 MBC 김태호 PD(무한도전, 놀면 뭐하니)나 tvN 나영석 PD(삼시세끼, 알쓸신잡)의 ‘몸값’이 스카우트 시장에서 크게 뛴 예를 들며, 성공적인 PD가 되기 위한 여섯 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궁금하시다면 기사 전문을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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