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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11.23 08:05   조회수 : 7,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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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지사 정운경.jpg

▲정운경 애국지사 묘

 

<중부저널 김서윤 기자>제천문화원(원장 윤종섭)은 지난 18일 애국지사 묘소 2기의 새단장을 완료했다. 『제천시 의병묘지관리비 지원에 관한 조례』 가 2014년 제정된 이후 시의 예산지원을 받아 추진하고 있는 ‘의병묘소 관리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이번 사업은, 정운경, 박여성 두 애국지사의 묘소를 정비하였다. 

 

애국지사 박여성.jpg

▲박여성 애국지사 묘

 

윤종섭 제천문화원장은 “비석이 없어 누구의 묘소인지도 알 수 없던 애국지사들의 묘에 비석을 세우며 뿌듯함을 느꼈다.”라며, “앞으로 타 지역에 소재하는 제천의병관련 묘소도 신경쓰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추진하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제천문화원은 현재 14기 이상의 묘소를 성역화하고, 매년 20여기 묘소를 연 2회 벌초 등 관리하며 호좌의병창의지로 그 자부심을 이어가고 있다. 기타 의병묘소관련 궁금한 점은 제천문화원(☎043-462-3646)으로 문의 하면 된다.

 

※참고자료

의병이란?

나라가 위태로울 때 국가의 명령이나 징발을 기다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나아가 불의에 항거해 싸운 의인들로 존중받아 마땅한 인물을 말한다.

 

정운경(鄭雲慶1861~1939) 애국지사는?

정운경은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후예로 충청북도 제천(堤川) 금성 월림리에서 태어났다. 동학이 일어났을 때 지역 동학접소를 소각했다. 1895년 이춘영 등이 제천으로 입성하자 의병을 거느리고 참가해 전군장으로 활약했다. 거의가 실패로 끝난 후 류인석을 모시고 서행에 참여하였고, 이 후 영춘으로 되돌아 왔다. 1905년 원용팔의 거의 소식에 다시 독자적으로 봉기하여 단양을 장악하는 등 기세를 떨쳤으나, 원주 진위대에 체포되었다. 15년형을 언도 받고 복역하다가 황해도로 유배되었다. 그 후 사면되어 고향으로 돌아 왔으며 이후에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일제에 항거하다 투옥되기도 하였다. 문집은 『송운집(松雲集)』이 있고, 묘소는 제천 금성면 월림리에 있으며,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80년 묘소 정비화와 공적비가 세워졌다.

 

 

박여성(朴汝成, 成烈,1860~1908) 애국지사는?

자는 여성(汝成), 호는 오성당(五成堂), 본관은 충주, 제천 장담에 살았다. 1879년 무과에 급제 훈련원 첨성, 이후 오위 상군을 지냈으며, 1907년 평양진위대가 해산당한 후 청풍으로 내려와 조동교, 황대성, 방필성, 박덕준 등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고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15일 휘하 의병을 지휘하여 일본군과 약4시간동안 치열한 격전을 벌인 끝에 승리하였고 또 야간 포위공격을 가하여 이들을 끝내 충주로 퇴각시켰다. 1908년 10월 13일 충주 달천에서 일군과 교전 중 전사 순국하였다. 묘소는 봉양읍 공전리에 있으며,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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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문화원, 정운경, 박여성 애국지사 묘소 새단장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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